인도네시아 선교 단상 - 사랑하기까지 10년이 걸렸군요...



인도네시아 선교 단상 -
사랑하기까지 10년이 걸렸군요...


2021년 2월 13일

인도네시아에 코로나 바이러스로 4월부터 모든 대중교통수단이 중단된 후
비로소 첫 비행기가 뜨던 2020년 6월 2일 아내와 아이들을 먼저 한국에 보내고
혼자서 가족들 짐 정리 해 놓고 한국으로 들어온 지 어느덧 두 달이 되었습니다.

약 7개월을 인도네시아에서 혼자 지내다
비록 작은 연립 주택이지만 가족들이 있는 양주로 와서 함께 지내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.

혼자서 아이들 데리고 집이 없어 이곳저곳 다니며 전전했던 아내,
아이들 학교 문제에, 거할 집 문제에
혼자서 많이 고생했을 아내의 얼굴을 보는 게 미안하지만,
가장 힘들 때 아빠 노릇 하지 못한 게 많이 미안하지만
그래도 함께 있어서 참 좋습니다.

아내가 해 준 맛있는 밥에,
장모님이 보내주신 김장김치, 진한 곰탕, 신선한 굴,
이번 재난지원금으로 산 돼지고기로 만든 수육과
3년 동안 내내 먹고 싶어 했던
냉동만두, 소시지, 김밥, 떡국 등 잘 먹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.
그리고 가장 하고 싶었던 걷기도 열심히 하고 있고요.

한국으로 오기 며칠 전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받으러
저희 대학교 옆 종합병원에 갔었습니다.

종합병원이라고는 하지만 군데군데 거미줄과 벗겨진 페인트,
오래되고 낡은 병원 기구들,
병원인지 식당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매점,
이런데 입원하면 도대체 어떻게 될까 싶은
어느 것 하나 한국의 병원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이는 모습에서
하나님께서는 지난 10년 동안의 저를 보게 하셨습니다.

'아, 이 모습이 인도네시아인데
내가 나의 잣대로 이들을 판단하며 살아왔구나'하면서 말입니다.
비로소 인도네시아의 본 모습이 제 눈에 들어온 것이지요.

한국은 이렇지 않은데 여기는 왜 이런지,
한국은 깨끗한데 여기는 왜 이리 더러운지,
빵가루 하나만 떨어져도 들끓는 개미들,
왜 이렇게 무질서하고, 쓰레기는 아무 데나 버리고,
아무 데서나 담배 피우고, 딱 시키는 것만 하고,
의리도 모르고 은혜도 모르고 등등...

있는 그대로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
내 기준에 판단하고 우쭐해했던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러워졌습니다.

'하나님, 선교사로서 제가 참 잘못 살았군요.
섬기러 온 선교사가 아니라 아주 교만한 외국인이었습니다, 주님.'

한국에 온 지 두 달이 지난 지금,
선생님 하며 따르던 우리 친구들이 그리워집니다.
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친구들,
한국을 너무 좋아해서 한국 것이라면 무조건 좋아하는 친구들.

그 친구들과 찍은 3년 동안의 사진을 보니
그리움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.
하나님께서 선교사인 나에게 보내주신 귀한 영혼들.
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돌아봐야 할 영혼들.

이제는
낡고 허름해도 좋고,
이상한 냄새가 나도 좋고,
이해가 되지 않아도 좋습니다.
엄지손가락만한 바퀴벌레가 불쑥불쑥 튀어나와도 좋고
징그러운 도마뱀이 내 방에 천정에 붙어 있어도 좋고
팔뚝만 한 쥐가 종회무진 이리저리 다녀도 좋습니다.

그게 바로 인도네시아의 모습이고
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친구들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.

한국 가는 선생님 대접한다고
없는 돈에 족자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예약해 송별식도 해 주고
빨리 돌아오시라고 울먹이던 우리 친구들이
눈에 아른거립니다.

이들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나 봅니다.
내가 더 하나님의 사랑으로 진심으로 사랑하면
그들에게도 성령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스며들리라 믿습니다.
그리고 예수님을 구주로서 만나게 되는 날이 오겠지요.

이것이 선교사인 제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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